기고/하남미래발전위원회 운영위원장·이학박사- 최 무 영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강조하며‘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고 공언했다. 이 각오는 집권 후반에 들어가면서 여러 각도로 회자하면서 칭찬보다는 비판이 더 앞서고 있는 현실에 처해있다. 즉, 진보와 보수를 떠나‘내로남불’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도덕적인 흠결이 있더라도 내가 하는 것은 평등과 공정과 정의가 살아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적폐청산’이라는 프레임에 가둬 놓고 맹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정권에서는‘아빠찬스’와‘엄마찬스’에 대한 다툼이 법적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평등의 의미는 권리, 의무, 자격 등이 모든 사람에게 고르고 똑같음을 뜻한다. 평등에는 기회의 평등과 조건의 평등, 결과나 산출에서 차별받지 않고 똑같은 대우를 받는 데서 의미가 부여된다. 평등한 사회란 신분, 성별, 재산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서로 존중받는 사회를 말한다. 그러나 요즘같이 자유를 제멋대로 행사하여 세간의 지탄을 받는 현실에서 평등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공정함은 '공평하고 올바르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공정사회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부패가 없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에 대한 물음에 갸우뚱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도덕적으로 공정해야 함에도 도덕성 자체를 부정하는‘내로남불’이 횡횡하는 상황에서 과연 문 정부가 수 없이 강조하고 있는‘나라답게, 정의롭게’가 통용될 수 있을까?

정의로움은‘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로 정의된다. 요즘 원로가수의‘테스 형’으로 유명해 진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정의라고 하였고,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본질은 평등‘이라고 하였으며, 고대 로마의 법학자인 울피아누스는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리려는 항구적인 의지'라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현실이 과연 그런 평등과 공정함과 정의로움이 그대로 살아있는 사회인가? 에 대한 물음에 고개가 갸웃해지는 것은 나의 편견 때문일까? 과연 공평하고 평등한 기회를 가지고 있고, 공정한 과정으로 이루어졌으며, 결과가 정의롭게 나타나고 있을까? 어찌 생각하면 진영논리에 따라 극명하게 갈라질 수 있겠지만, 나라 전체가 총체적인 부실로 일대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서 그에 대한 실망감은 더 크다 하겠다.

대통령이 호언하는‘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의구심을 버릴 수 없음도 나의 편견 때문일까? 가급적 객관성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나에게도 요즈음의 사회는 서로의 경계가 허물어진 현실에서 그 실망감은 더 크다. 평등, 공정, 정의는 서로 별개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등에 의해서 공평한 공정이 실천되고 그 결과에 따라 정의가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에 형평성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오늘날의 정의(Justice)가 정립되었다. 법무부를 ‘Ministry of Justice’라고 표기하는 것도‘법과 정의’를 불가분의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연결고리를 자의적으로 연결했다가 끊어버리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라는 취임 일성을, 지금에 외서는 기성세대의 오랜 특권과 반칙이 그것을 깨뜨리고 있다는 불공정을 핑계로 삼으며 도덕과 윤리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눈으로 보면서도 아직도 그런 사회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을까? 과연 그런 사회가 오긴 오는 것일까? 현재로 봐서는 요원하게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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