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남신문 고문 신우식

 

세계는 영토수호 문제로, 개인은 땅 문제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많아 토지분쟁 조정위원 역할이 필요하다고 한다.

중국도 영토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인력과 물자를 투입해 거대한 만리장성을 쌓았다. 개인은 이웃집 경계 침범이나 도난·재물손괴를 걱정해 철조망을 치고 만리장성 같은 담을 쌓는 비능률적인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필자가 잘 아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땅을 매입해 공장을 건축했다. A씨는 공장을 건축하면서 주변에 만리장성 같은 담을 쌓았다. 필자는 A씨에게 왜 담을 쌓냐고 질문했다. 넓은 담을 쌓는 비용으로 공장을 하나 더 지으면 국가와 개인에게 이익인데 왜 담을 쌓는지 의문이 들었다. A씨는 나에게 살아가다 보면 그 이유를 알게될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의미 있는 대답을 했다. 살아가다 보니 필자에게 A씨의 말이 현실이 되는 사례가 있었다.

1980년대는 땅을 매입할 때 정확한 측량을 하지 않고 대략의 경계를 규정하고 서로 신뢰로 땅이 거래되던 시절이었다.

필자는 서로 신뢰로 땅을 거래하던 시절에 땅을 매입했고, 땅 매입 10년이 지난 후 이곳에 건축을 하기 위해 정확한 측량을 진행한 결과 필자의 땅에 B씨의 주택이 건축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B씨를 만나 가옥 철거를 요구했으나 30년 이상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철거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아보았지만 법률상으로 해결하기에는 복잡한 과정이 있어서 일정부분은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B씨의 가정사를 알아보니 아들은 장애인이고 며느리는 집을 떠난지 여러해가 넘었다. B씨 혼자 나물을 뜯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여섯 살 난 손자를 키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보니 필자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필자도 초등학교 때는 미국 원조를 받은 우유죽이나 강냉이죽을 먹고 자랐다. 중학교 때는 점심도시락이 없어 물로 배를 채우던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이런 기억이 떠오르다보니 땅 문제는 차치하고 B씨를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B씨에게 필자의 땅 소유 일부를 무상으로 내어주고 농산물을 경작하게 했다. B씨는 이곳에서 농산물을 경작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손자에게는 용돈과 옷을 사주며, 명절에는 필자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0년이 지난 뒤 B씨가 필자에게 자신의 집으로 와달라는 전화를 했다. B씨의 집에 가보니 그는 건강이 많이 안좋아져 손자와 함께 사위 집으로 들어가고 아들은 병원에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사위가 B씨의 집에 도착했다. B씨는 사위를 보더니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은 필자의 것이니 집을 철거하고 필자에게 땅을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위가 별다른 말이 없자 B씨는 이 집을 철거하지 않으면 자신 소유의 땅을 팔아 양로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 사위는 법률적으로 철거를 거부할 수 있지만 장모님의 의견이니 따르겠다고 했다.

이후 B씨는 이삿짐을 다 옮기고 집을 철거했다. 집을 철거하는 상황을 필자와 B씨는 함께 보고 있었다. 자신의 집이 철거되는 것을 보던 B씨는 필자의 손을 꼭 붙잡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런 모습을 보니 너무나 쓸쓸해 보였다.

필자는 담을 쌓지 않고 대문을 달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한문 공부만 12년을 하신 한문학자이신 숙부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담을 쌓고 대문을 닫아 놓으면 소통이 끊어져 재물이 들어오지 않아 가난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가르침은 농경사회에서나 가능하다. 지금과 같이 철저한 원리와 법률을 따지는 현대사회에서는 만리장성 축성이 다 이유가 있고, 외부로부터 도난이나 주거침입 방지를 이유로 부득이 하게 담을 쌓을 수 밖에 없는 각박한 시대이다.

이런 각박한 시대에 자신의 권리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결국 피차 소송을 하게 되고 법률적으로 해결을 하다 보면 누군가는 죄인이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발생한다.

그러나 역지사지를 생각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필자와 같이 훈훈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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