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문화콘텐츠 추진 vs 보령, 사당 짓고 십년째 제사

 '백제 때 도미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 부인은 절조 있고 예뻤다. 개로왕이 소문을 듣고 가짜 왕을 보내 시험했다. 부인은 하녀를 위장시켜 방에 대신 들여보냈다. 왕이 대로했다. 두 눈을 뽑고 욕 보이려 했다. 부인은 꾀를 내 배를 타고 고구려로 달아났고, 그곳에서 남편과 해로했다.’

 삼국사기 등에 나오는 도미부인 얘기다. 이 설화의 무대와 관련, 도미부인 설화의 발원지를 두고 하남시와 보령시가 발원지 논란을 빚고있다.


 최근 하남시가 하남시문화원 주최로 지난 10월31일 ‘제1회 학술대회 2009 도미설화 학술대회’를 개최하자 보령시의 심기가 불편하다. 보령시는 10여년 전부터 자기네 지역이 발원지라며 제사까지 지내왔기 때문이다.


 하남시문화원 학술대회에서 향토사학자와 교수 등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는 ‘개로왕이 455~475년 재위했던 백제 초기의 왕성 위례성은 하남에 있다.’ ‘도미부부의 거주지는 바닷가가 아니라 한강유역으로 하남과 서울 송파구로 압축할 수 있다.’ ‘도미부인이 고구려로 달아난 것으로 볼 때 황해도 재령강에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등의 주장이 쏟아졌다.


한양대 최래옥 명예교수는 ‘도미설화 콘텐츠화’에 대한 주제발표를 통해 ‘남원의 춘향’ 처럼 도미와 하남을 일치화 시키는 것은 물론 도미 로고·노래·석상·판소리 나아가 도미 연구소·자료관 나아가 국내·국제회의, 도미부부의 이야기 제작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도미전설의 발원지를 찾아서’라는 주제발표에 나선 도수희 충남대 명예교수는 “도미의 거주지는 왕경에서 비교적 가까운 기내 지역이며 도미의 신분은 편호소민이 아니라 정승반열의 고관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밝혔다.


도 교수는 특히 “도미가 두 눈을 잃고 배에 실려 띄워진 강가는 현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으로부터 약 10리쯤에 위치한 한강변(검단산의 두물천하)의 도미진(두미진)으로 추정한다”고 강조, 도미설화의 배경을 하남시 일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박대재 고려재 한국사학과 교수는 도 교수와 같은 주제에 대해 “하남시 배알미동의 도미(두미)진이 도미전과 관련해 주목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도미라는 이름 때문으로 한자는 다르지만 도미라는 동음 때문에 도미부부가 떠난 나루로 인식된 것”이라며 “그러나 도미 또는 두미의 지명은 도미진과의 관련성보다는 두 물이 만나는 곳에 대한 고어인 두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한자식 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는 반론도 나왔다.


이와 관련 보령시는 지난 5일 오천면 소성리에서 전해지는 설화를 토대로 1990년대 초 도미설화의 근거지임을 선언하고, 각종 선양사업을 벌였다. ‘보령에 도미항과 도미부인이 남편을 그리던 상사봉이 있다.’는 향토사학자들의 주장이 나온 뒤 소성리에 도미부인의 사당을 짓고 1995년 정부에서 공인한 도미부인 표준 영정을 제작했다.


도씨 문중은 2003년 경남 진해시에서 도미부부의 것으로 추정되는 묘를 소성리로 이장하기도 했다. 시는 매년 사당에서 이들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보령시 관계자는 “도미설화는 진해시, 서울 강동구 등도 관심을 보였고, 송파구는 뮤지컬 제작을 시도했었다.”면서 “홍길동 등 원조논쟁을 보면 관련 사업을 먼저 벌인 곳이 인정을 받았다.”고 보령시가 원조임을 내세웠다.


하남시문화원 백영옥 사무국장은 “설화인 만큼 무대가 어디인지는 결론이 안 났다.”며 “하남시와 도미설화를 문화콘텐츠로 개발하는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박필기 기자 news@ehan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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