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하남시협의회 자문위원-정 민채

앞에서 언급한 성명회(聲明會)는 일시적으로 섬광처럼 빛을 발하여 위세를 과시했으나 너무 급조된 조직체였다. 지속적 행동이 따르지 못한데다 러시아 당국의 탄압을 받아 활동이 한 달도 채 넘기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사태의 진전을 주시하던 한인 지도자들은 보다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독립운동의 방략(方略)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 강구책으로 결성한 것이 권업회(勸業會)였다.

  권업회는 1911년 12월 19일 이상설, 이종호, 이동휘, 최재형, 최봉준, 이범윤, 유인석, 홍범도, 윤해, 정재관 등 당시 신한촌 한인사회에서 가장 신뢰를 받고 영향력이 있는 애국인사들로 구성되었다. 이 조직은 여러 계열의 단합된 노력에 의하여 결성되었으며 임원에는 회장에 이상설, 부회장에 이종호가 선출되었다.

   여러 계열의 지도자들의 단합이라 함은 상당한 의의가 있다. 많은 애국지사들이 신한촌을 중심으로 운집해 있었으나, 그들의 주장과 입장이 각기 달라 통일된 단일 의견을 도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권업회는 그 명칭이 말해 주듯 극동 러시아 한인들에게 실업(實業)을 권장하고 근검 절약정신을 기르며 교육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명칭을 권업이라 한 것은 일본의 방해를 피하고 러시아 당국의 허가를 얻어 합법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위장술이었고 실제는 독립운동이 주목적이었다.

  따라서 이 조직은 급진적인 의병 항전을 하거나 울분과 감정에 의한 극렬적인 항일시위를 하기보다는 민족의 힘을 길러 장기적인 전략으로 독립전쟁을 해야 한다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실업부, 교육부, 선전부, 검사부 등의 부서를 두고 교육진흥, 신문간행, 한인 자치활동, 토지조차(土地租借), 귀화문제 등의 업무를 추진하였다.

  권업회는 규모가 꾸준히 확장되어 번성기에는 회원이 8,579명에 이르고 하바로브스크, 수이픈, 스챤 등 한인 사회가 있는 거의 모든 지역에 지회가 결성되어 10개 이상이 되었다. 이 조직은 체계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을 함으로서 연해주 한인들의 구심체(求心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勃發)로 러시아와 일본이 동맹국으로 제휴함으로서 권업회를 강력히 탄압하여 그 활동이 위축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영사관에서는 이동휘, 이상설, 이종호, 유동열, 이강 등 중요인사들을 연해주에서 추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러시아 당국은 권업회를 해체시킴으로서 1914년 8월 단명의 비운을 맞았다. 

  연수 두 번째 날 민주평통 하남시협의회는 블라디보스토크 ‛Khabarovskaya ul., 19, Vladivostok, Primorsky, 러시아’ 주소로 찾아가 독립운동의 중심지 신한촌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길쭉한 기둥 모양의 세 개의 탑이 나란히 서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철창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주위는 완전히 아파트단지로 되어 있었다. 이곳이 ‘상해 임시정부의 모체가 된 국민회의 진영을 비롯한 모든 독립운동 세력들의 성지이고 최초의 코리아타운’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음은 현지 가이드 ‘빅토루 황’의 설명이다. “1920년 4월 일본의 대대적인 신한촌 습격사건이 일어났다. 그때부터 신한촌이 붕괴되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때도 고려인들의 일부는 남아서 거주를 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정책이 시행되고 나서는 그 흔적조차 사라져 버렸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어진다. “탑은 ‘해외한민족연구소’에서 1999년 신한촌 망명정부수립 80돌을 맞아 신한촌 기념탑을 세웠다. 세 개의 기둥 중 가장 높은 것은 남한 동포, 두 번째로 높은 것은 북한 동포, 세 번째로 높은 것은 해외동포를 상징한다.”고 했다.

  신한촌의 독립운동 성지(聖地)는 너무 초라해 보였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옛날 약소국이 아니다. 세계열강과 어깨를 겨룰 만큼 성장하고 당당해졌다. 선열들의 희생과 항일정신이 깃든 이곳은 바로 한국의 독립 혼을 상징하는 장소다. 이대로 방치 할 수는 없다. 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 시와 협의하여 애국지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연해주 독립운동의 전당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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