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황제의 사찰 하남 동사지 (4)
칼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단국대학교 초빙교수-정성권
하남 동사지에 대한 발굴 조사는 ‘세계 최대 철불’인 하사창동 철조여래좌상이 고려 제2대 왕 혜종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점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서 촉발된 나비효과는 그동안 정확한 조성 시기가 파악되지 않았던 다른 국보나 보물급 불상들의 제작 연대와 조성 배경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보로 지정된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과 보물로 지정된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천왕사지 철불인 하사창동 철조여래좌상과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은 통일신라 전통을 계승한 뛰어난 조각 솜씨를 보여주는 불상이다. 이 불상들은 그동안 나말여초기나 태조 왕건시기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정확한 조성 주체나 건립 배경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말의 시기 지역적 특색이 강하게 드러나거나 고려 건국 후에는 ‘신양식’ 불상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통일신라 불상을 강하게 모방한 불상이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작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고려 초기 불상의 양식을 보면 고려 왕조는 통일신라 작품과 차별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속성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왕실의 후원이 있어야 조각할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작품들이 통일신라 전통을 강하게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 쉽게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었다. 하사창동 철조여래좌상은 석굴암 본존불을 그대로 모방하였으며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시기 조성된 대구 동화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델이 되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역시 통일신라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마애불이다.
하남 동사지의 발굴 조사와 축적된 연구 성과는 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하는 열쇠 역할을 하였다. 연구 결과 동사는 고려 광종이 혜종과 그의 후원자 왕규의 근거지였던 천왕사를 견제하기 위해 조성한 사찰임이 밝혀졌다. 고려 2대왕 혜종은 즉위 직후부터 왕권 찬탈을 시도하는 충주 유씨 세력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았다. 이에 대항하여 외척 세력이 미약하였던 혜종은 개경으로 가는 전통적인 교통의 요지 하남 천왕사에 석굴암 본존불과 동일한 모습의 대형 철불을 조성하였다. 혜종이 천왕사에 석굴암 본존불을 닮은 거대한 철불을 만든 이유는 구 신라 세력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구 신라의 정통성을 혜종이 계승하였다는 점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한마디로 하사창동 천왕사지 철불은 혜종의 권위를 상징하는 불상이었다.
대구 동화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모방한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각연사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각연사는 친 혜종 세력인 진천과 청주 세력이 반 혜종 세력인 충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충주 권역과 인접한 지역인 괴산에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각연사 건립에는 문경 지역에 있었던 발해 유민도 참여한 것으로 연구된 바 있다. 각연사는 문경 지역에 거주하는 대규모 발해 유민과 함께 충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혜종 대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연사 불상의 건립 목적은 하남 천왕사에 대형 철불을 조성한 목적과 동일한 이유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아름다운 불상의 자태로 인해 그동안 통일신라 마애불로 여겨져 왔으나 필자의 연구를 통해 고려 혜종 대 조성된 마애불임이 밝혀졌다.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불은 한반도 땅끝에 가까운 해남 두륜산의 8부 능선에 조성되었다. 한반도 남단에 조성된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불에는 한강 유역 불상에서 주로 확인되는 양식적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북미륵암 마애불의 눈동자 동공 부위는 음각으로 파내어 조각되었는데 이는 다른 불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조각 방법이다. 그런데 천왕사지 철불의 눈동자에서는 확인되고 있다. 이밖에 불상 대좌 연판문 사이의 간엽이 마치 바닷가재 꼬리와 같은 3단의 층단이 있는데 이는 오직 하사창동 철불 대좌와 북미륵암 마애불의 대좌에서만 보인다. 다양한 양식적 유사점과 두 불상에서만 나타나는 양식적 공통점 등을 고려하면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역시 혜종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은 하남 천왕사지 하사창동 철조여래좌상과 매우 밀접한 양식적 공통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성 배경 역시 상통하는 점이 있다. 전라도 지역에서 혜종을 지지하는 세력은 전통적으로 나주 세력이었다. 이에 반해 순천 세력은 반 혜종 세력이라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순천의 강력한 호족이었던 박영규는 고려에 귀부한 이후 충주 유씨 세력이며 고려 3대 왕이 되는 정종에게 자신의 딸을 보내어 그의 첫 번째 부인과 두 번째 부인이 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혜종 재위 기간의 전남지역은 나주 세력을 중심으로 한 친 혜종 세력과 순천 세력이 중심이 된 친 왕요군(정종) 세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러한 정세 속에 지정학적으로 두 세력의 중간에 놓인 영암~해남 세력은 상대적으로 중립을 취하고 있었다. 혜종이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을 해남에 조성한 목적은 그의 권위를 이 지역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즉 뛰어난 솜씨의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반 혜종 세력인 순천 세력을 견제하고 중립적인 영암~해남 세력을 끌어드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그동안 통일신라 후기 불상으로 알려져 왔다. 최근의 연구를 통해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불이 고려 혜종 대 조성된 불상으로 밝혀졌다.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불에 관한 의문점은 하남 동사지가 발굴 조사되고 연구되며 풀릴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하남 동사는 천년의 수수께끼를 푸는 마법의 열쇠와 같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