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최종윤- 더불어민주당 하남지역위원회 위원장

 구의역 3번 출구의 바로 앞은 동부지방법원과 동부지방검찰청이 있던 자리이다. 지금은 청사만 남고 송파구 문정동에 새둥지를 틀었다. 법무사, 변호사, 공증 사무소 등이 함께 떠나 이제 일대가 다소 휑한 느낌을 받는다.

 

3번 출구를 따라 올라 다다른 잠실 방향 9-4 승강장에 서면 그 많던 추모 포스트잇은 더 이상 흔적이 없다. 다만 스크린도어 오른쪽 비상문에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나다”라는 글씨가 붙어있다. 휑했던 마음에 묵직한 돌덩이가 자리 한다. 유족이 노사 측과 합의해 글귀를 남겼다고 한다.

3년여 전 생일 전날 5월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홀로 정비를 하던 김군은 ‘가방 속의 컵라면’을 유품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우린 뜯지 못한 김군의 컵라면을 보며 가슴 아파했고 위험의 외주화를 깊이 반성했다. 김군의 마지막 가정의 달은 그렇게 가족과의 슬픈 이별로 끝났다.

김군에 이어 작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기계에 끼어 숨진 노동자 김용균 씨의 산업재해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찬반을 둘러싼 국회 진통 끝에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정작 김군도 김용균 씨도 개정된 산안법의 대상이 아니다. 지하철, 철도, 발전소 등이 산안법의 도급 금지 대상에서 빠진 데 이어 시행령에서 규정한 도급 승인에서도 제외됐다.

서울시민 일천만과 경기도민 일천삼백만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민주적이되 위계적이다. 지하철은 출퇴근길, 등하굣길, 지인을 만나러 갈 때 누구에게나 저렴한 대중교통이 되어준다. 17년 전국 이용자가 25억 명이었고 서울만 18억 명에 달했다.

서울시민과 경기도민의 발을 책임지는 지하철의 위계는 비정규직 확대와 함께 진행돼온 위험의 외주화에서 나타난다. 산업재해 통계를 설핏 봐도 하청업자의 사망이 원청의 8배이고 피해자 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여기에 더해 김군의 아픈 사례는 특성화고 출신의 어린 청년들이 무방비로 더 위험한 일에 내몰린 현실을 보여준다. 앞서 말씀 드린 김용균 씨도 24살의 하청업체 계약직 노동자였다.

하남에 차례로 들어올 지하철이 또다시 위계를 가라는 기준이 되어는 안 된다. 5호선의 경우 내년 4월에 개통될 예정이다. 공사가 올해 끝난다고 해도 최소 내년 4월까지는 안전점검을 반복해 실시해야만 한다. 이는 안전을 위한 조치이기에 더 단축키 어렵고 반드시 거쳐야할 통과의례이다. 다만 시민을 위한 안전조치에 또다시 하도에서 재하도로 이어지는 위험의 외주화가 반복되질 않기를 바란다. 김군과 같은 어린 학생이 혼자 위험을 무릎 써야 되는 상황이 되어선 안 된다.

지하철을 둘러싼 위계의 발생은 부동산에서도 나타난다. 부동산 가격은 지하철 역사와 집과의 거리에 반비례한다. 부동산114의 조사에 따르면 통상 지하철과의 거리가 도보 5분 이내일 때 평당 2천만원이 넘고 10분이 이내일 때 1천6백만원, 15분 이내일 때 1천 3백만이라고 한다. 역세권의 도보 5분이라는 기준이 아파트 값을 결정하는 셈이다. 교통 소외지역을 보완키 위한 대중교통이 되레 부동산 값을 들썩이며 위계를 심화시키는 현상이다.

때문에 저소득층 및 차상위 계층은 지하철로부터 배제되기 쉽다. 지하철은 중심가에 배치되고 저소득층과 차상위 계층은 높아진 집값에 의해 주변부로 멀리 밀려난다. 주변부일수록 지하철과 주변을 잇는 버스도 잘 배치되지 않는다. 대중의 발이 될 지하철이 부동산 가격의 위계를 가르고 지역 주민의 위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이는 지하철의 재원을 어디서 마련하느냐라는 교통정책의 철학과도 맞닿아있다. 교통정책의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이용자의 요금과 정부의 재정 지원 등 크게 두 가지이다. 물론 둘 다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지만 전자의 경우 수익자 부담이 원칙이고 후자는 정부의 책임과 의무를 더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교통 재원은 이중 요금의 비중이 8~90%로 훨씬 높다. 프랑스 파리의 30%, 미국 뉴욕의 40%와 비교가 안 된다. 대중교통의 사회적 편익을 고려할 때 정부 재정의 비중은 낮고 요금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요금의 비중이 높을 때 수익성을 쫓게 되고 재정 지원이 많을 때 공공성을 추구하기 용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교통 정책의 재원 체계는 공공성을 추구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하남의 지하철은 역세권에서 집값이 올라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더라도 그 위계를 최소화해야 한다. 연계 교통체계의 확립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승객이 적은 주변주까지 잇는 마을버스, 공공자전거, BRT, 트렘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재정 투입 없이는 실현키 어려운 과제이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에게 위험이 전가되고 주변이 중심에 밀리는 일이 적어도 하남에서는 최소화되거나 없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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