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남시 예동마을 지역주택조합 조합장 이재현
우리 사회는 노후화된 주거지와 낙후된 도시환경 개선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지역주택조합이 추진하는 민간제안 재개발 사업은 공공 재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민간의 창의성과 추진력을 활용해 도시 미관을 개선하고 주거환경을 혁신하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 대신 안전한 도로와 공원, 낡은 건축물 대신 쾌적한 아파트와 생활 인프라가 들어서면 주민의 삶의 질은 높아지고 지역경제도 살아난다. 이는 단순히 주택을 새로 짓는 차원을 넘어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공동체의 활력을 회복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남시의 구도심은 오래된 기반시설로 인해 재정비가 절실하다. 풍산지구, 미사지구, 그리고 이번에 추진되는 교산지구까지 모두 신도시 개발로 확장해 나가고 있지만, 정작 구도심은 민간 주도로만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신도시 개발은 정부가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추진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구도심 재개발은 민간이 주체가 되어 모든 과정을 떠안아야 하기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고, 이 과정에서 조합원과 사업자에게 큰 부담이 전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관할 지자체의 적극적인 행정적 지원과 조율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남 예동마을 지역주택조합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교산신도시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추진되는 이 구도심 재개발 사업장은 많은 시행착오와 난항 속에 한동안 정체되어 있었지만, 업무대행사 없이 조합 자체의 힘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조합은 부지 내 지주들을 직접 설득하며 꾸준히 매입을 진행해 왔으며, 현재는 2026년 사업계획 승인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민간이 주도하는 구도심 재개발이 얼마나 큰 인내와 비용을 요구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면, 이러한 민간의 노력이 지연되거나 좌초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실에서는 재개발의 긍정적 효과만큼이나 큰 걸림돌이 존재한다. 세입자와 원주민의 이주 문제는 생활 기반 붕괴와 공동체 해체라는 사회적 상처를 남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임대료 상승은 사회적 약자를 도시에서 내몰고, 보상 문제와 각종 민원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갈등을 증폭시킨다. 이러한 갈등은 필연적으로 사업 지연을 불러오고, 지연은 곧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그 부담은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으로 돌아가며, 사회 전체적으로도 막대한 기회비용을 잃게 된다. 도시 재생이 시민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면, 지연은 곧 그 미래를 갉아먹는 낭비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관할 지자체의 적극적인 행정이 절실하다. 행정이 단순히 허가와 심사에 머문다면 민간이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지자체는 조정자이자 촉진자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기반시설과 기부채납 문제는 제도 개선의 핵심이다. 도로와 공원 같은 기반시설은 도시 전체를 위한 공익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절차와 부담이 온전히 사업자에게 떠넘겨져 있다. 이 과정에서 행정 지연이 발생하면 사업자는 예측 불가능한 비용을 떠안게 되고, 이는 다시 조합원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가 기반시설을 공익사업 차원에서 우선 수용한 뒤 사업자에게 매도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사업 절차를 간소화하고 비용과 시간을 줄여,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기부채납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지자체가 의무만 부과하고 책임은 민간에게 전가하는 구조로는 사업의 효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지자체가 기부채납의 결정과 고시, 매입과 수용을 직접 담당하고, 민간사업자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민간은 불확실성 대신 명확한 비용을 감당하게 되고, 지자체는 공공성을 확보하며, 사업은 본래의 취지였던 주거환경 개선과 도시미관 창출을 조기에 달성할 수 있다.
재개발은 단순한 건축사업이 아니라 도시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적 선택이다. 민간의 자율성과 공공의 책임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지연은 비용이고, 적극행정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무엇보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역주택조합원들은 바로 하남시민이거나 앞으로 하남시민이 될 사람들이다. 시민들을 위한 적극행정이 곧 관할 관청의 본래 역할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주시길 바란다.
